냄새까지 이용... 카지노에서 돈 잃을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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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까지 이용... 카지노에서 돈 잃을 수밖에 없는 이유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하여 심리학자와 수학자까지 동원될 정도로 철저한 기획의 산물로 유명하다. 호텔에서 나온 이용객들은 번화가나 쇼핑몰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카지노 구간을 거쳐야만 했다. 가는 길의 대부분은 슬롯머신이 미로처럼 있어서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고, 곳곳에서 현란한 소음과 인테리어로 사람들의 시청각을 자극한다.
또한 카지노는 실내 온도까지 철저하게 조절하여 내부를 춥게하여 도박을 하는 이용객들의 음주를 유도한 뒤, 다시 온도를 높여 더 빨리 취하게 만들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상황을 반복했다. 결국 사람들은 카지노의 달콤한 집단 최면술에 알면서도 점점 빠져들고 헤어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카지노에서 1회 배팅액이 1000만 원 이상되는 고객은 하이 롤러(High roller)로 불린다. 이들은 전체 이용객의 5%에 불과하지만 카지노 수입의 약 40%를 차지한다. 카지노들은 이들을 영업하기 위하여 무료 항공권과 고급 리무진을 제공하며 전담 집사까지 제공할 만큼 공을 들인다. 호주 최대의 거부이자 미디어 재빌 케리 패커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단 3일 만에 2600만 달러(260억 원)를 썼을 만큼 대표적인 하이 롤러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이용객이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렵다고 한다. 한 일화에 따르면 일본인 이용객이 카지노에서 큰 돈을 연이어 획득하자, 해당 카지노는 일본인 남성이 게임하는 모습을 전부 영상으로 찍어 네바다대학교에 위치한 게임연구소로 보내어 그의 게임방법, 성격, 습관 등을 철저히 분석했다고 한다.
연구소는 남성이 카지노 직원의 몸에서 나는 체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포착했다. 이에 연구소는 남성이 게임을 할 때마다 겨드랑이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방향제를 특수제작하여 주변에 뿌리라는 대책을 고안했다.
결국 남성은 페이스를 잃고 그동안 땄던 돈을 모두 잃었다고 한다. 그만큼 철두철미하고 집요한 카지노 도박 시스템의 이면을 보여주는 일화다. '라스베이거스의 제왕'으로 불리던 호텔 사업가 스티브 윈(Steve Wyn) 윈리조트 전 회장은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 방법? 카지노를 하나 차리라"고 우문현답을 날리며 카지노에서 돈을 딸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인증하기도 했다.
도박과 함께 오늘날 라스베이거스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쇼비즈니스'다. 1960년대 이후 라스베이거스의 가능성에 주목한 미국의 자본가들을 통하여 마피아의 검은 돈 대신 합법적인 기업자금들이 투입되면서 또다른 전환기를 맞이한다.
하워드 휴즈(Howard Robard Hughes Jr. 1905-1976)는 도박의 도시 정도로만 알려졌던 라스이거스를 '사업가 중심의 도시'로 바꿔놓은 인물로 꼽힌다. 휴즈는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거리의 총수익 중 약 1/3을 장악했다. '괴짜'로도 유명한 휴즈는 라스베이거스에 체류하는 4년 동안 한 번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금욕적인 교리를 따르는 모르몬교도를 자신의 집사로 고용하여 일을 대신 처리하게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자본가들의 진출과 함께 라스베이가스의 중요한 변화는 공연문화의 발전이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4주만 공연하면 나라를 살 수 있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화려한 공연은 큰 인기를 누렸다. 호텔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프랭크 시내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등 당대의 슈퍼스타들은 독점 유치하기 위하여 공을 들였다.
1976년 동부의 뉴저지에서도 도박이 합법화되고 애틀랜틱시티에 새로운 대형 카지노타운이 건설되면서 라스베이거스는 처음으로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게 된다. 1980년대 들어 애틀랜틱시티의 급성장으로 라스베이거스의 도박 수입이 무려 10% 가까이 감소하며 위기를 맞이했다. 이에 라스베이거스의 사업가들은 도박 도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하여 고민하게 된다.
호텔사업가 스티브 윈은 자신이 개장한 새 호텔에서 초대형 화산쇼와 분수쇼 등을 선보이며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동안 호텔 내부에서 소수의 유료 이용객들만 관람할 수 있었던 쇼를 외부에서 모든 이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한 것. 이후로 많은 호텔들이 윈의 아이디어를 차용하며 동참하기 시작했다.
또한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대형 놀이기구와 아쿠아리움, 서커스 공연 등이 신설되었고 호텔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차별화된 고유의 콘셉트와 마케팅 경쟁을 펼치게 된다. 또다른 도박 중심에서 건전한 '레저 이벤트 타운'으로서의 이미지 만들기를 위한 라스베이거스의 변신이었다.
한편으로는 남성이나 여성들만을 위한 성인 대상 스트립 공연도 활성화되어 라스베이가스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비록 선정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30~40여 년에 이르는 역사를 자랑하며 전 세계 100개국에서 1억 명 이상의 관객들이 쇼를 관람했다고 할 만큼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세상 어떤 일도 모두가 쇼비즈니스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라스베이가스만의 철칙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950년대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인근에 핵실험장이 있었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핵실험을 관광산업으로 이용하거나 '미스원자폭탄 대회'를 개최하는 아이디어로 관광객을 유치하기도 했다.
사람이라면 일생에서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결혼과 이혼도 마케팅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혼이 금기시되던 1930년대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주법은 이미 1931년부터 불과 6주만 체류하면 속전속결로 이혼을 허가해주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로써 이혼을 원하는 남녀들은 이혼도 하고 겸사겸사 관광과 유흥도 즐길 겸 라스베이거스로 몰리게 되면서 호텔과 식당의 매출이 급상승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혼 마케팅이 대성공을 거두자 네바다주는 이번엔 결혼법까지 제정했다.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하는 '결혼사무국'을 운영하고 초간단 웨딩과 초고속 혼인신고 등을 통하여 결혼 절차와 비용을 간소화했다. 통상적으로 미국 다른 지역에서 24시간 이상 걸리는 혼인신고도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단 15분이면 가능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유명인들도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린 일화는 유명하다.
최근에는 단돈 25달러(한화 3만 원)에 달리는 차량 안에서 이루어지는 '드라이브 스루' 결혼식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웨딩 관광산업으로 라스베이거스가 올린 매출만 약 20억 달러(약 2조 6900억 원)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라스베이거스의 눈부신 성공과 화려만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라스베이거스는 급격히 늘어나는 노숙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노숙자 단속법'까지 제정해야 했다. 도박과 유흥에 빠져 몰락하고 거처를 잃은 노숙자들은, 법망을 피하여 지하 배수구로 내려왔고 이들을 칭하는 '두더지족'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현재 두더지족은 약 1400여 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라스베이거스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자살수도'라는 오명으로 불릴 만큼 높은 자살률도 라스베이거스의 고질적인 오점으로 꼽힌다. 도박과 유흥의 도시이다보니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인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하여 라스베이거스로 몰려오거나, 혹은 거금을 잃고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은 추락으로 인한 자살을 막기 위하여 대부분이 창문 개방을 못 하도록 막아놓았다.
"라스베이거스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돈이 이렇게 말하고 사라자는 곳이다." 라스베이거스의 황금기를 직접 체험했던 명가수 프랭크 시내트라가 남긴 감상평이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는 격언처럼, 라스베이거스는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꿈과 희망의 도시로 꼽히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어두운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미래의 라스베이거스가 과연 그 구조적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고 앞으로 또다른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